3. 감정과 욕구
나는 종종 갑작스럽게 생긴 욕구를 당연하게 참으려고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욕구는 게임하고싶다는 욕구, 성적 욕구 등등 사회에서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욕구들과 같다. 그러다 문득,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들었다. 감정과 다르게 욕구는 그저 참는 것이 맞는 걸까? 욕구와 감정은 다른 걸까? 감정은 참지 않고 자연스럽게 느끼는 것이 좋은데, 욕구는 다를까?
감정과 욕구는 무엇인가?
감정은 사람을 조종하는 힘이다. 예를 들어, 두려움이라는 감정은 위협을 피하게 만들고, 기쁨은 만족에 관한 행동을 강화하게 만든다. 이를 내면의 나침반으로 비유하기도 한다.
욕구란 사회학 사전에서 유기체로부터의 인간이 내부적으로 어떤 결핍이나 과잉현상이 생길 때 정상상태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움직임으로 정의한다. 예를 들어 혈당이 낮아지면 배고픔을 느끼고, 음식을 먹고자 하는 강한 욕구가 생긴다. 또, 외로움이나 사회적 고립을 느끼면 친구, 연인과 관계를 맺고 싶다는 욕구가 생긴다. 반대로, 과잉 상태에서 정상으로 회귀하려는 욕구는 생리적인 항상성 유지 메커니즘과 관련이 있다. 지속적인 스트레스에 노출되면 정서 마비가 발생해 자극에 대한 반응을 차단한다. 또는 섹스, 포르노 중독자에게서 도파민이 과도하게 분비되면 뇌가 수용체를 줄여 반응을 둔화시킨다. 이는 허탈감으로 이어진다.
욕구는 크게 결핍 욕구와 성장 욕구로 구분된다. 결핍 욕구는 한 번 충족되면 끝이다. 그러나, 성장 욕구는 충족될수록 그 욕구가 더욱 증대된다.
매슬로의 욕구 단계이론에선 생리 욕구, 안전 욕구, 애정과 소속 욕구, 존중 욕구, 자아실현 욕구로 구분한다. 이런 욕구는 단계적으로 해소되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생리 욕구부터 존중의 욕구는 결핍 욕구로 분류되고, 자아실현 욕구는 성장 욕구로 분류한다.
자기 결정성 이론에선 인간에겐 3가지의 기본 심리적 욕구가 있다고 설명한다. 자율성, 유능성, 관계성의 욕구가 이와 같다. 자율성의 욕구는,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조절하고 결정하고자 하는 욕구다. 유능성의 욕구는, 도전을 통해 효능감을 경험하고자 하는 욕구다. 관계성의 욕구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친밀한 상호작용을 하고자 하는 욕구다. 이 세 가지 욕구가 동시에 충족될 때, 인간은 내적 동기와 심리적 건강, 행복감을 경험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가장 널리 알려진 욕구 이론은 매슬로의 욕구 단계이론이지만, 현대 심리학에서는 SDT와 같은 이론이 매슬로 이론의 한계를 보완하고 있다.
감정과 욕구는 무슨 관계가 있는가?
감정은 욕구의 결과다. 예를 들어, 안전 욕구가 위협받으면 불안, 두려움이 나타난다. 존중 욕구가 충족되지 않을 때 열등감이나 분노를 느낀다. 사람은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감정(호르몬)
을 유발해 사람을 조종한다.
욕구는 그저 참는 것이 옳은가?
자아 고갈 이론은, 자기 통제에 대한 심리적 에너지가 한정되어 있음을 강조한다. 즉, 욕구를 억누르면 심리적 에너지가 소모되어 다른 무언가를 할 에너지를 상실하게 된다. 감정 표현이나 욕구를 참을 수록 다른 무언가를 할 힘을 잃게 된다.
미국의 바우마이스터 교수는 사람들에게 슬픈 영화와 재미있는 영화 두 가지 중 하나를 보여주면서, 감정을 표출하지 못하게 했다.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은 어떻게 됐을까? 이후 충동적으로 변하거나, 의욕을 상실했다고 한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표현하지 않도록 많은 심리적 에너지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인간 관계에서 지치고, 피곤하고, 기빨리는 느낌을 받는 이유가 이러한 이유가 아닐까?
그렇다면, 항상 욕구를 억누르는 것은 옳지 않다. 사람에게 욕구가 생기는 것은 당연하고, 그 욕구를 해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욕구가 과하면 문제가 될 수 있다. 과한 욕구는 본인뿐만 아니라 타인에게 피해를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다이어트하기 며칠 동안 음식물 섭취를 아예 하지 않으면, 계속해서 심리적 에너지가 고갈된다. 심리적 에너지가 모두 고갈되면, 충동적으로 폭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따라서, 건강한 다이어트는 영양분을 섭취해야 할 때는 건강한 식단으로 섭취하고, 운동도 병행하는 것이 옳다. 이는 욕구를 단순히 억누르지 말고, 적당히 해소하는 것이 옳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렇다면, 과한 욕구가 들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무슨 욕구가 들고 있는지를 알아차리는 것이 첫 번째 단계다. 그리고, 욕구를 충족하지 않고 계속 지켜보면 가라앉는다. 이를 관법이라고 한다. 과한 욕구는 그저 참지 않는다. 상태를 알아차리고 지켜보면 결국에는 사라진다고 한다. 마치 내 감정 상태를 파악하고, 감정을 인정한 뒤 받아들이는 것과 같다.
흰 곰을 떠올리지 말라고 하면, 더 떠오르게 되듯 욕구를 참으려고 하면 오히려 컨트롤이 안된다.
욕구를 마냥 참으면 어떻게 되는가?
자율성의 욕구가 상실된다. 자율성의 욕구가 상실되면, 다음과 같은 특징이 나타난다.
- 주도적으로 내 삶을 이끌어 나가기보다는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대처한다.
-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대로 주류를 따라간다.
-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목적이나 방향성이 분명하지 않다.
- 막연히 원하는 것은 있으나, 그것을 추구하기 위한 현실적인 방법을 찾기 어렵다고 느낀다.
- 대체로 우울하고 활력이 없다.
현재 내 상태와 비슷하다고 느껴진다. 현대인들은 어렸을 때부터 놀고 싶은 욕구를 마냥 참으며 공부하는 것이 미덕이라고 배운다. 그 결과, 싫은 걸 참는 능력이 우수한 사람이다 라고 인정받는다. 과도하게 절제하는 상태가 유지되면, 본인 스스로를 억압하는 습관이 형성되며 더 나아가 성격으로 굳어진다.
자율성이 상실된 상태로 살아가면, ‘해야 되는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해야 된다’라고 막연히 생각하면서 살아간다고 한다. 그 결과, 삶의 전부가 ‘해야 하는 것’으로만 채워지게 된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해야 하는 것’이라면, 그 책임을 지기 위해 버티는 시간으로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소모하게 된다.
그저 공부해야 한다, 발전해야 한다, 계속 자기 계발을 해야 한다. 막연히 이렇게 느끼고는 있지만, 정말 이것들을 해야 할까?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뭘까? 무엇을 위해 이렇게까지 하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