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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22

2025-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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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감정일기

오늘의 감정 : 애증, 귀찮음

애증 (6/10)

마음이 점차 안정화됨에 있어, 아직까지 잔향으로 남아있는 감정이 존재한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그리움을 느낀다. 그 감정으로 이것저것 찾아본다. 그리고 정이 떨어지며 미움의 감정이 생긴다. 요즈음 이를 반복하고 있다. 따라서 애증이다.

이런 모습도 부정하고 싶은 나의 일부였지만, 이를 받아들이니 한결 마음이 편안하다. 또한, 내가 느끼는 감정들을 살펴보았다. 생각보다 부끄럽거나 숨길만한 감정들은 아니었다. 오히려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한번쯤 겪고 느낄 수 있는 보편적인 감정들이었다. 즉, 내가 느끼는 감정들이 부끄럽지 않은 당연한 감정이라는 자기확신이 점차 생기는 중이다. 성적 욕구도 마찬가지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성적 욕구가 아예 없는 사람은 비정상이다. 번식을 통해 자손을 남길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연한 욕구다. 생각했던것 만큼 나에게 숨길만한 요소는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왜 이러한 것들을 숨겨야한다고 생각했을까? 주입된 유교 사상도 한 몫을 한다 생각한다. 친가 쪽은 유교 성향이 짙고, 외가 쪽은 기독교 성향이 짙다. 생각해보니 어머니는 외할머니에 의해 무수히 많이 기독교 사상을 주입받았을텐데, 평소에 그러한 부분을 느끼지 못했다. 그것을 이겨내신 모양이다. 대단한 분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다르다. 유교 사상의 현신이다.

도대체 유교 사상에서 추구하는 바가 무엇인가? 한 개인을 도덕적인 인간상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라고 한다. 도덕이란 무엇인가? 효도와 우애, 진실함과 배려 등의 덕목을 실천하고 인, 의, 예, 지를 지키는 것이다. 왜 개인을 도덕적인 인간상으로 만드는가? 세상에 도덕적인 사람만 있다면, 모든 사람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이상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비판할 점들이 보인다. 우선, 도덕이란 주관적이다. 누군가에겐 도덕적인 행동이 누군가에겐 도덕적이지 않다고 비춰질 수 있다. 이는 모든 사람이 만족할만한 도덕적 기준이 없다는 뜻과 같다. 따라서 모든 사람이 만족할 수 없다. 개인은 욕구가 존재하며, 그 욕구를 만족하지 않는다면 그 욕구를 채우고자 할 것이다. 충돌과 싸움은 반드시 발생한다. 즉, 모든 개인이 도덕적 잣대를 지킨다 하더라도 평화롭게 공존하는 이상 사회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유교 사상에서 마땅히 해야하는 것이라는 관점도 비판하고 싶다. 세상에 당연한 진리는 없다. 과거에 천동설을 믿었던 것처럼, 뉴턴 법칙이나 전자기학 등의 고전 법칙도 일반 상대성 이론, 양자역학의 등장으로 틀렸다는 것을 알게된 것처럼 세상의 진리라고 믿었던 모든 것들은 반증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러나 마땅히 해야한다는 태도는 이러한 반증 가능성을 무시하고 사람에게 천동설을 주입시키는 일종의 가스라이팅이 될 수 있다.

유교 사회의 핵심은 개인의 삶의 질보다, 공동체의 존속을 주로 다루는 것 같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 당시 시대에서 공동체의 존속이 필요한 이유가 있었을까? 바로 전쟁이다. 공자가 살았던 시기는 주나라의 권위가 무너져 수많은 제후국들이 패권을 다투던 시기었다. 따라서 전쟁이 끊이지 않았고, 기존의 사회 질서가 무너졌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서 개인의 생존은 보장받기 어려웠을 것이고, 안정과 질서를 갈망했을 것이다. 공자는 이러한 문제가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타락하여 발생한 문제라고 판단하고, 모든 사람이 도덕과 예를 지키면 전쟁은 멈춘다고 생각했다. 유교 사상의 등장 배경이다.

그렇다면, 지금 유교 사상이 필요한가? 어느정도 필요하다고 느낀다. 만약 도덕적 잣대가 없다면, 힘과 권력을 가진 사람이 그 힘을 개인의 욕구 충족에만 사용할 것이다. 그 힘을 공동체의 존속에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도덕이라는 제약이 존재하기 때문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유교 사상은 현대 사회의 중요 가치인 평등, 자유와 충돌하는 부분이 있다. 그렇다면, 유교 사상을 맹목적으로 배척하거나 수용하는 것은 옳은 태도가 아니다. 도덕으로 인해 사회가 적당히 평화롭게 존속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도덕적 기준으로 인해 개인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것도 부정적인 측면이다.

결론은 무엇인가? 애초에 도덕이란 주관적이다. 개인이 추구하는 가치와 도덕은 분리되지 않는다. 애초에 보편적인 사람이 추구하는 가치가 바로 도덕이다. 개인이 행복을 추구하고 그것을 위해 살아간다면 그것에 대해 옳고 그름을 가치판단할 수 없다. 개인이 성장과 인정을 추구한다면, 그것 또한 좋다. 사회가 기준정한 도덕적 잣대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개인이 만들어가는 것이 바로 도덕이다.

귀찮음 (7/10)

시험 공부가 왜이렇게 귀찮지? 사실 알고 있다. 이건 내 내재적 동기로 하는 행동이 아니라, 성적을 잘 받기 위해 ‘해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걸 해야할 필요가 있을까? 해야 하는 것에 치여 행복을 놓치고 있는건 아닌가? 일상의 행복을 챙기고 싶다.

그렇다면 이를 내재적 동기로 전환시켜 보자. ‘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이는 내가 언젠가 필요한 ‘배우고 싶은 지식’이다. 그리고 어려워서 하기 싫다면 그것을 하기 쉽도록 최대한 잘게 쪼개보자.


오늘의 깨달음

  • 높은 시험 성적을 받자마자 다른 성적도 높게 받고싶은 욕심이 생겼다. 그 마음이 생기자마자 공부가 하기 싫어졌다. 내재적 동기가 동력일 때, 외재적 보상이 주어지면 손상된다.
  • 사람을 바꾸려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존중하라.
  • 보통 “고집세네”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고집이 세다. 왜 상대방을 바꾸고싶어서 안달이 났는가? 그 상대방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고집이다.

오늘의 칭찬

힘든 날에도 너 자신을 놓지 않는다는게 대단해. 그거 정말 쉽지 않은거야.


오늘의 감사 일기

  • 오늘 맛있는 유부초밥집을 알게 된게 감사하다.
  • 감정의 스펙트럼이 넓어져서 좋다.
  • 오늘 하루가 감사하다.

[!note]- 감정 일기의 최종 목표{title} 나는 ~를 원하기 때문에 ~라는 감정이 들었구나를 이해하고, 그것을 통해 나를 더 이해하는 과정이다.

[!question]- 나만의 감사일기란?{title} 일상의 소중함을 느끼고, 긍정적인 마음을 가져 타인을 사랑하고, 자존감 향상을 위한 일기입니다. 일상의 사소한 것, 당연한 것들을 감사하는데 의의가 있습니다.

[!NOTE]- 편지{title} 인정할게

솔직히 지금 너가 많이 그리워

너가 지금 뭐하고 있는지

너도 나를 그리워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매일 투두메이트 들어가서 검색해봤어

그런데 블로그는 도저히 못보겠더라

블로그를 보면 내 마음이 식어

너의 트위터 말투는 솔직히 좀 별로야

그래도 그런 너가 보고싶어

그런데 너에게 쉽게 연락은 못하겠어

너는 잘 살고 있는 것 같아서

그리고 아직 다른곳에서 받은 상처가 아물지 않아서

너가 이별할때 보여준 냉담한 태도를 마주치면

그 상처가 더욱 벌어질 것 같아서 무서워

내가 마음적으로 더 건강했다면 너를 붙잡아도 보고 해봤을텐데

.

그런데 막상 너를 다시 만나고 싶지 않아

웃기지?

너를 만나며 좋았지만 힘들었던 부분도 있었어

가장 힘들었던건 마음이 하루아침에 변해버린걸 느낄 때

그리고 며칠 뒤 카톡으로 통보를 받았을 때

그것이 되풀이 될까봐

다시 만나고싶지 않아

그리고 내 모습도 돌아봤어

참 매력없더라

표현도 없고 주관도 없고

별 생각도 없어보였을 거 같아

대화할때 너를 존중해주지도 못했어

너의 감정도 알아차리지도 못했어

너가 왜 마음이 식었는지, 왜 힘들어했는지

고민해보지도 않고 대화도 안나눠보고 혼자 끙끙 앓기만 했어

.

솔직히 날 놓친 너가

땅을 치고 후회하는 모습을 보고싶어

의미는 없겠지

내 상처가 더욱 벌어질까봐 네게 연락도 하지 못하고

그리고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도 없다면

이제는 나의 가치를 올리려고 해

몸도, 마음도

이제는 더욱 건강해져서

앞으로는 건강하고 성숙한 사랑을 하고싶어

사랑해 미아야

사랑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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