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19
오늘의 감정일기
오늘의 부정 감정 : X (/10)
오늘의 긍정 감정 : 미안함 (6/10)
나는 오늘 이 감정을 언제, 어떤 상황에서 느꼈나요? 오늘 깨달은 내용에 비롯되어, 과거 여자친구에게 미안함을 느낀다.
이 감정이 느껴질 때 말, 행동, 생각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X
왜 이 감정을 느꼈다고 생각하나요? 내가 부모에게 받았던 상처를 내 무뚝뚝한 반응이나 무관심해 보이는 태도를 통해 상대방에게 그 상처를 고스란히 옮기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긍정 감정을 느낀 나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칭찬이나 격려는? X
오늘의 깨달음
가끔씩 이유도 모르게 피어오르는 불안감, 초조함의 감정은 무엇일까?
이 감정은 혼자 있을 때 느끼고, 정서적으로 가까운 사람과 있을 땐 느껴지지 않았다. 즉, 나는 외로운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과거엔 알지 못했다. 굳이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 하는가? 나 혼자서 할일을 다 처리해가며 재밌게 살아가면 되지 않을까? 그렇지 않았다. 사람은 사회적인 관계를 맺으며 생존해왔고,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도록 진화해왔다. 때문에 고립되었다고 생각될 때 느끼는 불안감이나 초조함의 감정은 ‘어서 고립에서 벗어나!’라는 내 몸에서 나에게 보내는 시그널이었다.
부모는 잘해준 것만 기억하고, 자식은 못해준 것만 기억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자연스러운 것이다. 무엇을 오래 기억에 간직하고, 무엇을 기억하지 않을 건지는 내가 취사선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것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잘못은 아니다. 기억은 강한 감정과 동반되기 때문이다.
나는 부모에게 혼날 때나, 내가 귀찮다는 태도를 느낄 때 강한 감정을 느꼈다. 그때의 기억이 오래 남은 것 뿐이다. 부모는 내게 잘해주고 사랑을 준다 느꼈을 때 충만한 감정, 행복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그때의 기억이 오래 남은 것 뿐이다. 그리고 내게 상처줄 때, 귀찮아할 때는 상대적으로 나보다 훨씬 덜한 감정이었기 때문에 기억하지 못한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사람을 말로 바꾸려하지 말자.
사람을 바꾸고자 말로써 무언가를 가르치거나 이렇게 행동해줘. 라고 말하는 것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가 느낀 감정을 공유하며, 이성적으로 내 통제와 선택 하에 상대방의 행동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낼 수 있다. 이는 내가 대등하지 못한 관계, 상대방이 더 높다고 생각하는 관계에선 솔직히 하기 어렵다고 느낀다. 그러나, 대등한 관계라고 느낀다면 충분히 가능한 영역이다.
상대의 의도와 내가 받은 상처는 별개의 문제다.
이는 서로 독립이다. 부모 입장에선 나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며 원통해하고 억울해할 수 있다. 이것은 충분히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그리고 그 억울한 감정에서 비롯된 마구 해명하고 싶은 충동이 들 것이다. 이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이 감정을 본인이 인지하고 적절한 행동을 취할 것인지, 충동에 몸을 맡길 것인지는 개인의 성숙도 차이에 따라 다르다.
그들은 감정, 마음, 사랑에 대해 무지하다. 그리고 해명을 통해 자식이 본인의 의도를 이해하고, 마치 내가 가진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고 내 의도를 알아주기‘를 바랄 것이다. 그리고 자식의 성숙도가 높아지면, 머리로 이해 가능한 순간이 오게 된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머리로 부모를 이해했다면, 그 부모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멋대로 상처를 받은 내 잘못이 아닐까? 와 같은 왜곡된 생각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처를 받는 것도 부정할 필요가 없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상대의 의도와, 내 가슴에 남은 상처는 별개다. 상처를 받은 것은 상대를 이해하는 것으로 치유될 수 없다. 다음 상황을 한번 생각해보자. 칼을 든 사람이 갑자기 발에 걸려 넘어지며 상대의 복부에 칼을 무자비하게 쑤셨다. 그리고 칼을 들었던 사람은 말한다. “나는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 정말 실수다. 당신을 해칠 의도는 전혀 없었다. 나는 당신을 존중한다.” 칼을 맞은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까? ‘저 사람이 나를 해칠 의도는 없었구나.’ 라고 생각하며 상대방을 용서하고 상처가 바로 치유될까?
상대의 의도와, 내가 받은 상처는 서로 독립이다.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했다 하더라도, 상처를 받은 내 자신이 잘못되었다는 왜곡된 생각을 가질 필요는 없다.
내가 한 생각들을 구구절절 보여주는 것은 옳은가?
내가 했던 생각들을 보여주었던 내 속마음은 무엇인가? 내 의도를 알아주고, 나를 이해해주기를 바랐었다. 그러나 이 마음가짐은 마치 가해자가 내 의도와 달랐으니 이해해주고 용서해달라는 자기중심적 태도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상대가 이해해주는 것과, 상대가 받은 상처는 별개의 문제였다.
그렇다면 나는 연인 관계에서 어떻게 하는게 좋았을까? 반대로 생각해보자. 아빠는 내게 어떻게 해야 했을까? 내가 가장 바랐던 것은, 상대방이 내가 받은 상처와 스트레스를 왜 받았을지 한번 스스로 생각해보며 이해해주기를 원했다. 따라서 내가 생각한 내용들을 상대에게 보여주며 상대가 나를 이해해주기를 바랄 것이 아니다. 내가 상대방을 이해해야 한다.
상대방이 부정적인 감정이나 태도를 내게 내비치는 상황을 가정하자. 나는 그것에 대해 해명하고, 그 해명을 통해 상대방이 나를 이해해주기를 바랄 것이 아니다. 상대방이 내게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 내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 내가 어떤 행동을 잘못했을까? 를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이 내용만 평생 가져가도, 누굴 만나도 인정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위 생각들을 혼자서 하며 혼자서 결정하라는 환원주의에 빠지라는 뜻은 아니다. 갈등 상황일 땐 서로 의견을 나누며 갈등을 풀어가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 의견을 나누는 과정에서 상대가 마냥 나를 이해해주라는 태도를 가지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의 부모님은 이 사실을 그저 모를 뿐이라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렌즈가 업데이트 되었다.
기타
- 상대방에게 자존감을 키워라, 너 자신을 사랑하라 라는 도움안되는 말을 해주는 것보다 자존감이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사람의 어린 시절에 무슨 일이 있었나? 돌아보도록 질문하는게 더 효과적이라고 느낀다.
- 상처의 크기는 다를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작은 상처가 상처가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니다.
- 내게는 거부하고 선택할 권리, 나를 통제할 권리가 있다.
- 무언가를 해주는 것보다 절대 하면 안되는 행동을 안하는게 사랑하는 관계에서 더 중요하다고 한다.
- 아빠에 대한 최종적인 나의 스탠스는 다음과 같다.
- 아빠는 어린 사람이란 것을 인정한다.
- 그러나 굳이 가까워지려고 하지 않아도 되고, 굳이 관계를 아에 끊으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적당히 거리를 두며 상대하는 것이 최선이다.
- 그리고 의존 관계를 하나씩 끊으며 상대방과 나의 관계를 동등하게 만든다.
- 이는 아빠의 의사와는 관계 없다. 내 행동은 내가 선택하고 내가 결정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 혼자 생각해봤어도 그 얘기를 남이 해주는 것과는 또 다른 얘기다.
- 이런 걱정을 하는 것이 실례이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가질 필요는 없다. 그 걱정은 자연스러운 나의 감정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것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 부정하지 않아도 되는 나 자신의 모습이다.
오늘의 감사일기
- 내가 마냥 행복하고 걱정없이 자랐다면? 이런 소중한 내용들을 얻을 수 있었을까? 고난이 내게 주어진게 감사하다. 고난은 사람을 성장시켜준다. 맞는 말이다.
- 우리를 친절하게 대해준 쌍화차 카페 주인 아주머니께 감사하다.
- 건강한 신체를 가진 것에 감사하다.
[!note]- 감정 일기의 최종 목표{title} 나는 ~를 원하기 때문에 ~라는 감정이 들었구나를 이해하고, 그것을 통해 나를 더 이해하는 과정이다.
[!question]- 나만의 감사일기란?{title} 일상의 소중함을 느끼고, 긍정적인 마음을 가져 타인을 사랑하고, 자존감 향상을 위한 일기입니다. 일상의 사소한 것, 당연한 것들을 감사하는데 의의가 있습니다.